“우리 교회는 지역에 늘 열려 있어요. 마을주민들은 무슨 일 있으면 꼭 교회로 상의하러 와요.”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하나교회(정영구 목사) 주일 예배 직후 만난 황윤정(49·여)씨의 말이다.
황씨는 하나교회를 동네 주민들의 울타리라고 표현했다. 마을회의 장소로 쓰거나 어린이집 아이들을 잠시 맡아주는 일은 예사다. 해외 교포들의 임시숙소가 됐다가 마을 독서모임 장소로 변하기도 한다. 이 교회의 공간은 교인만의 배타적 소유가 아니라 마을 주민의 공동 소유가 된 지 오래다.
교인들은 마을 활동 곳곳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황씨는 “마을 행사 준비를 도와주러 가면 이미 우리 교인들이 음식을 만들거나 책자를 나눠주면서 일하고 있다. 어딜 가나 교인들이 안 보이는 곳이 없다”고 했다. 공익학원 ‘반올림’ 원장인 이수연(46·여)씨는 “이전에는 주민들이 뭐 하고 사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안다”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공동체라는 걸 하나교회 와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나교회가 자리 잡은 상도4동 일대는 서민이 주로 사는 인구 밀집 지역이다. 주변 지역보다 낙후된 편이라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마을활동가 하재웅(41)씨는 “개발이 잘 안 됐지만 20∼30년 장기 거주한 주민이 많아 마을공동체 사업이 활발한 편”이라고 전했다.
하나교회는 2007년 12월 지금 위치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인근 중형교회들은 이미 지역주민에게 도시락봉사나 지역문화센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나교회는 교회가 모든 걸 준비해 베푸는 방식보다 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사업을 만들어나가는 길을 택했다.
2010년 10월 지역 도서관인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며 지역교회로의 첫걸음을 뗐다. 지역 시민단체인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희망동네)와 협력했다. 2011년에는 공익학원 반올림을 만들었다. 공부하고 싶은데 학원비가 없는 아이들이 대상이었다. 지역 학원 강사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쳤고, 한 달 수강료는 2만원만 받았다. 따로 전도하지 않았지만 학원에 나오던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교회 주일학교 학생이 됐다.
이외에도 하나교회 교인들은 다양한 지역사업에 참여한다. 고가의 주거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청년들을 위한 공유주택사업의 일환인 ‘성대골 마을 주거환경관리사업’과 동네 공부방 아이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급식협동조합 ‘노나매기’ 등이 대표적 사례다. 지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려 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민들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하나교회가 처음 지역사회 활동에 뛰어들 때만 해도 주민 반응은 시큰둥했다. “교회에서 전도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정 목사는 “지금처럼 활발히 지역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외적 성장에 목매지 않고 작은 교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회선교라는 이름으로 교회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중세의 사고방식”이라며 “지역사회와 교회에 필요한 것들을 주민과 함께 고민하며 어울려 살아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 모델을 복음전도 수단으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20일 “기존의 지역공동체 운동은 대부분 복음전도 수단으로 여겨져 도덕적 우위를 갖고 시혜를 베푸는 데 그쳤다”며 “이럴 경우 지역 주민들은 교인 수 증가나 교회 성장이라는 다른 속내를 갖고 다가왔다고 생각해 교회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작은교회연구소장 이재학(오산 하늘땅교회) 목사는 “초대교회가 로마의 박해 때문에 전도가 어려운 상황에도 로마 전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로마 군인에게 쫓기는 사람을 숨겨주고 재산을 털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등 더불어 살면서 보여준 삶의 모습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