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17-03-18 21:53

[들소리신문] 20160509 주일설교말씀-격려는 더 멀리 보게 합니다

관리자
댓글 0
격려는 더 멀리 보게 합니다히브리서 10:19-25
이재학 목사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596호] 승인 2016.05.09  13:03:0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이재학 목사하늘땅교회 담임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좋아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살다보면 참으로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인간은 그만큼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불완전 속에 완전을 이루어 가기에 아름다운 꽃으로 필 수 있는 것이 또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생은 흔들리면서 피어도 누군가에게 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완전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해서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불완전으로 인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합니다.

신앙은 실패자에게 들려오는 좋은 소식입니다. 나의 완벽한 인생을 위해 신앙이라는 날개를 달고 추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 완벽하고 잘 나가던 인생도 한 번은 고비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때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나를 격려해주시고, 가장 가까이에서 친구 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분이 지신 십자가가 그렇게 무거워서 버렸는데, 그것보다 내게 주신 은혜가 클 수 없기에 다시 돌아와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9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소개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22절에서 보듯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김 받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3~24절과 같이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살게 됩니다.

여기서‘격려’라는 단어는‘stimulate’입니다. 이 말의 뜻은 ‘자극을 주어서 힘을 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격려는 서로 사랑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도록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stimulate’은 헬라어로 ‘파록시노’인데, 자극을 주어서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 분발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나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가 있는데, 이것이 세상에 눌려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격려의 말로 한 영혼의 인생이 살아나게 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공동체는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격려하게 하시려고 공동체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격려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데 시작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정에 따라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듯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격려는 정말 믿음이 있어야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냥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는 무리 속에서 12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나옵니다. 부르신 목적은 자기와 함께 하게 하시려고, 전도하게 하시려고,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행하게 하려고입니다. 무엇보다 함께 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더 많은 사역이 우선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그분의 보좌 앞에 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를 더 많은 사람을 격려하는 사명자로 살게 하려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격려를 말로나 행동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긴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거의 꾸중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아빠는 네가 많이 틀리면 위로하러 학교 앞으로 마중 갈 거야.”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아이는 압니다. “우리 아빠는 나를 정말 사랑하셔.” 왜 그렇습니까? 시험성적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격려를 참 많이 하려고 합니다. 격려는 내가 하나님께 위로 받고, 그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제 격려하는 삶을 위해 도전해 보십시오. 오늘 말씀 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라고 했습니다.‘권하여’는 격려한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오직 격려하여 더욱 모이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힘을 주는 것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힘겨워하는 이웃에게 격려자로 오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그럼 새로운 소망을 가슴에 품습니다. 삶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