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15-12-21 15:01

[예배음악매거진] 20151008(목) 예배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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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천국 빵을 얻는 예배를 준비하십시오(룻 1:1~7)

 

우리의 모습 들여다보기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시간 없이 주일을 보냅니다. 또한 교회들은 우리 교회에 오면 최고의 빵이 있다고 선전하거나 파는 데도 관심이 적습니다. 저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빵집에 빵이 있어야 하듯,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교회가 싸늘한 오븐과 텅 빈 진열장 주변에서 잡담이나 즐기고 있는 빵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빵집에 빵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룻기는 베들레헴이 살던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그 어느 해 그곳에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가족을 이끌고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이사 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모압 지방에 살면서 그 가족은 더욱더 힘든 상황이 놓이게 됩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 후에, 결국 그 집안은 아내와 두 며느리만 남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희망이 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고향땅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풍성한 양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책임지게 된 나오미는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합니다. 고향에서 들려온 좋은 소식 하나로 룻과 나오미의 모든 상황은 새로워지고, 가정을 회복시키며 한 나라의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역사가 시작하게 됩니다. 베들레헴은 그 이름이 “떡집, 빵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베들레헴이 많은 곡식을 보유한, 그래서 먹을 것이 풍성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빵집에는 빵이 풍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빵집에 빵이 없게 되면, 사람들은 빵집을 떠나게 됩니다. 빵을 찾아 떠났는데 그 사람들의 나중 형편은 점점 더 심각한 상태로 떨어지게 되어, 삶의 희망을 잃게 됩니다. 빵이 있어야 할 곳에 빵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다른 대안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더욱 치명적인 상처들을 남기게 됩니다. 남편을 빼앗아 가고 자녀들을 빼앗아 가고 가정을 몰락시켰으며, 삶의 활력을 빼앗아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오늘 교회가 이렇게 빵이 없는 빵집이 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세상은 분명히 생명의 빵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 빵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 교회에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의 빵을 세상에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교회마저 빵이 없어 텅 비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이 빵집을 외면하고 빵집에서 희망을 잃고 죽음의 세상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설령 빵이 있다고 해도, 그 빵의 진정한 맛을 맛보지 못하고, 다시 다른 빵집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빵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충분히 빵을 먹고 경험하지 않으면, 술집으로, 시장으로 나이트클럽으로, 우상이 가득한 사이비 빵집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을 막아서서 다른 사람들마저 못 들어가게 하니 하나님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집에 다시 빵이 생겼다는 소문이 어렴풋이 돌고 있습니다. “그쪽에 정말 빵이 있습니까? 그럼 나도 같이 가겠소. 당신이 어디로 가든 나도 가겠소. 당신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당신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이오.”(룻 1:16) 하지만, 빵집인 베들레헴의 평판이 어찌나 나빴던지 오르바는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오랜 허위광고에 진이 빠져 오르바처럼 ‘가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따라올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교회의 생명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생명의 빵을 먹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의 빵을 먹고 살아가는 곳입니다. 저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우리 모두가 하늘의 빵을 먹고 돌아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하여 사람들이 생명의 빵을 얻기 위해 몰려오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사람들의 것만 가득한 교회, 생명도 없고 열기도 없는 차갑게 식은 교회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그 행렬에 분통을 터트린 까닭은 그것이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자신들의 종교 의식에 방해가 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만남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분이 동네에 오셨건만 그들은 몰랐습니다. 안에서 메시아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는 사이, 메시아는 문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문제는, 메시아가 그들이 고대하던 방식대로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충분히 경험하십시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의 빵은 다 팔리고 맙니다. 그 빵을 먹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배고픔 그대로 교회 문을 나가야 합니다. 정작 매주일 와서 과거에 있었던 부흥의 부스러기 몇 조각을 찾아 바닥을 살피다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의 텅 빈 내면을 드러내시기 위해 우리 육체의 휘장도 ‘찢어야’ 하실지 모릅니다. 문제는 교만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보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은 외면한 채 그분이 계셨던 곳만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예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과 목마름과 배고픔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거짓 것으로 우리를 배부르게 못할 것으로 우리의 속을 채우고 스스로 속으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목마름을 느끼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예배는 살고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 안에 비로소 생명의 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굶주린 세상에 빵이 있다는 소식은 광속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배고픈 세상에 빵이 있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은 빵집입니다. 이 빵집을 생명의 빵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고 배고픈 영혼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가 되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예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입니다. 제물이나 형식도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 자신입니다. 예배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을 정결하게 씻고 그 보혈로 온 몸을 덮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처음 예배자로 등장하는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의 피의 제사를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죄인이기에 죄 된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드리는 예배만이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허락하십니다.

솔로몬은 예배에 자신의 전부를 드렸습니다. 천 마리의 제물을 번제로 드렸고 정성과 최상의 것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처소를 짓는 일에도 최고의 것으로 최상의 성전을 지어드렸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솔로몬에게 하나님도 최고의 축복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예배에서 일천이라는 많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예배의 중심에는 피 흘림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제물의 피로 속죄함으로 드리는 제사였다는 것입니다. 정성과 더불어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피곤하고 힘든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마음과 목숨과 중심을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가? 아니면 찌꺼기들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드리는 예배인가 아니면 화려한 건물과 첨단 시설과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자랑하는 예배를 드리는가? 예배는 예배자 자신을 드리는 것이요, 그래서 예배를 드릴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감격과 기쁨을 누리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는 참된 기쁨을 줍니다. 또한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살아있는 감격이 있는 찬송 중에 하나님은 임재 하십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찬양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을 하나님이 그토록 회복하기 원하시는 것은 다윗의 장막에서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만나기를 소원하며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예배자가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교회가 세상에 생명의 떡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에 우리는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를 최우선으로 합시다.

이재학이재학 목사

시를 쓰고 설교를 하는 일이 얼마나 진실해야 하는지를 아는 글쟁이 목회자이다.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 하늘땅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으며 지역 내에서 목회자를 섬기기 위해 작은교회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박사)를 수료하였다. 지역 내에서 복음적이고 선교적인 삶을 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성도들의 삶의 자리를 먼저 고민하는 목회자, 말씀을 가슴에 심는 설교자가 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