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후기

19-03-25 18:22

20190324(주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최지현
댓글 11

믿고 따르던 스승이 죽고 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는 나눌 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도 구세주예수님께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답이 없는데 계속 말 해봤자 고통스러운 기억만 떠오를 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다른 제자들도 힘없이 자기 일터로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 침묵을 깨셨습니다. 교회가 고통의 문제를 선뜻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을 때 앞서 고통 당하신 예수께서 먼저 입을 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이 당한 고통과 제자들의 곤고한 처지에 관하여 어떤 해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더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故 백희숙 권찰님의 아버지이신 백승하 권찰님께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먼저 우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로선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애통한 마음에서 흘러나온 간증은 시종 교인들의 사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아버님을 통해 나를 사랑하느냐? 너희는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픔은 문제가 아니라 길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잘 해결하기만 하면 사라지지만, 길은 그저 나아가거나 뒷걸음칠 수만 있을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해답을 주시지 않고 방향만 물으신 것 같습니다. 사랑의 방향으로 가는가, 각각의 도피처로 흩어져 돌아가는가.

 

이어서 정해경 집사님께서 故 백희숙 권찰님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들을 간증하시며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을 들려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왜 예수께서 두 분의 성도님을 통해 같은 질문을 두 번 하시는지, 사실 제 마음은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 앞에 저는 떳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피한 베드로와 같이, 저는 요 며칠 간 저만의 바쁜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회고적인 고백이 아니라 의지의 표현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반복적으로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늘 부족하고 길을 잃고 뒷걸음질 치는 저에게 베드로의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실은 죄송합니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더 잘 하겠습니다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을 대언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목사님은 팔복 중 하나인 애통의 복이 단순히 위로받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애통함 없이 마냥 기쁘기만 한 예배는 껍데기일 뿐이고 애통하는 자만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느낄 수 있다고. 아픔이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딛고 가는 길임을, 주님의 죽음에 통곡해본 제자만이 주님의 부활에 기뻐할 수 있음을, 그래서 성도들이 함께 애통할 때 아픔이 치유된 하나님 나라를 참으로 소망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애통하고, 이웃이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지 못했던 자신의 죄에 애통하는 심령은 성도라면 반드시 예배 자리에 가지고 와야 할 헌물인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던지신 질문의 변주처럼 들렸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해서 여기 온 것이냐, 아니면 그냥 습관적으로 온 것이냐?

사랑한다면 애통하는 심령은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설교 후반부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질문이 담긴 특정 구절이 합작하여 저의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다른 성도들의 헌신과 예배에 대리만족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예배를 사모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설교 내용을 생각하면서 평소 묵상하던 예수님의 질문을 다시 읽어 보니,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는 구절이 눈에 밟힙니다. 지나치게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다른 시몬 말고 요한의 아들 시몬, 세상에 한 명 밖에 없는 바로 너. 용인 이동면 송전리의 최지현아, 김태식 집사나 장다은 집사 말고 바로 최 집사 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 앞에서 베드로를 울상으로 만들었던 깊은 자괴감 같은 것이 내게 있었던가요? 애통하는 심령은 혼자서 감정을 쥐어 짜내거나 주변 분위기에 적응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 속에서 교제하는 가운에 주께서 말씀의 은혜로 내려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간증, 간증, 설교... 예수님 말씀이 세 번 울린 후에 저도 베드로처럼 울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모든 간증과 설교가 그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께서 힘든 상황 속에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시는지 지켜보면서 땅에서 하늘을 사는 공동체의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슬픔이 있는 길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꿋꿋이 걸어간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또한 성도님들의 걸음에 보조를 잘 맞추지 못했던 저 자신의 부족함을 재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각 지체들에게 저마다의 부흥이 일어나고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주님의 역사가 계속해서 성취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故 백희숙 권찰님 댁에 주님의 위로가 나날이 더하여지기를 기도합니다. 

  • 이재학 19-03-25 21:15
    집사님, 첫글이 참 묵직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공동체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을 놓고 기도하다가 산상수훈 팔복을 읽게 되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 집사님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뭇앞에 날마다 무너져서 꼼짝 못하고, 요령이나 수단 피우지 않고 본질 붙잡게 됩니다. 그것이 변함없는 주님 사랑이기에, 집사님 감사하고 참 많은 생각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경학 19-03-25 21:17
    진솔하게 예배후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
  • 예겸예안맘♡ 19-03-25 22:06
    이 글을보며 주일예배가 다시 팔복이 묵상되네요.
    애통하는마음가지고 너는 내가보낸 백성들과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앞에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사람 없는거같습니다. 사람과사람을 이어주는사랑이아닌 주님이 주신사랑으로 사랑하느냐.
    네 주님!사랑합니다.라는고백이 흘러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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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가람 19-03-25 23:03
    말씀을 마주한 모두에게 은혜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임을 다시 발견합니다.
  • 김경아 19-03-26 12:16
    집사님의 귀한 나눔에 저도 다시 한번 팔복 묵상합니다.
  • 최락희 19-03-26 18:17
    예배후기로 집사님의 마음과 삶을 볼 수 있아서 감사했고
    마음의 울림이 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을 저에게도 던져봅니다.
  • 오성환 19-03-26 18:32
    집사님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집필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곧 좋은 책 출간을 기대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말씀보면서 저는 사랑은 표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알 수가 없으니 말이죠. 하늘땅 공동체에서 기도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성도분들 뵈면서 사랑이 넘치는 교회임을 항상 느낍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진심의 사랑의 표현이 넘치는 하늘땅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 강세로라 19-03-26 20:25
    집사님의 후기를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마지막 날 주님과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지가 새겨질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 이용하 19-03-26 23:10
    집사님, 은혜받았어요. 작가 하셔도 되겠네요.
  • 이용현 19-03-26 23:12
    집사님, 멀리서 기쁘게 다니시니 대단해요
  • 김태식 19-03-28 19:16
    말씀의 고백이 마음에 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