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고난주간 아우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아우가 누운 무균실과 제 사이에는 비닐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그 옆에서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신호를 교감합니다. 쪽잠을 자야하는 작은 평수의 간이 의자지만, 고통을 함께 나누는 그 자리가 집에서 편한 잠을 자는 것보다 더 편합니다. 집에서 걱정하는 마음보다 아주 가까이에서 간호하며 아우를 지키는 것이 더 낫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책이 있습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정약용의 <어느 유배지로부터 온 편지>는 지금까지도 인간의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기억나 해줬습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절망에서 소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Already)’ 승리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재방송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직(Not Yet)’종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우리는 이미 이겨놓은 싸움, 이미 부활의 약속을 따라 살아갑니다. 기독교는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있습니까? 부활이 없는데, 약속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매일 눈을 뜨고 하루를 맞이하는 삶,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삶, 출근했다 집으로 귀가하는 삶, 순간마다 부활을 체험하고 구원을 체험하며 이 땅 가운데서 순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어떻게 얻은 인생입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승리하는 인생 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