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배의 중요성, 즉 영향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예배학자는 아니어도 예배자가 되고 싶은 갈망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매주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로서, 우리 공동체의 모임이 한번 모였다가 헤어지는 일이 되지 않게 하려고, 나 스스로 예배자로 서기를 매 주일 다짐합니다.
한국교회는 한 주일에 최소 3회, 일 년에 156회의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 낮예배로부터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구역예배, 금요철야예배, 가정예배까지 수 없이 모이는 모임에 ‘예배’라는 말을 붙입니다. 이렇게 많은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성도들과 예배를 돕는자들은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지, 적어도 예배에 나오기 이전의 삶이 예배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놓치고 삽니다.
우리는 예배(Worship)가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 있는 분으로 찬양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처소가 옮겨질 때마다 여호와 앞에 단을 쌓았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18:1) 여기서 마므레는 ‘뜨거운’, 헤브론은 ‘교제의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뜨거운 교제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은 100세의 얻은 아들을 주님께서 요구하실 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철저히 ‘예배’였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이 이 순간에도 예배를 드릴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나는 예배합니까?
어떤 상황에도 예배합니까?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합니까? 화려한 악기와 무대, 찬양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영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의 승패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결판이 납니다.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어려우니까 보이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보이기 쉬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예배는 건물도 아름답고 영상과 무대와 음향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예배를 돕는 것이지 예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한 예배자, 진정으로 그 삶속에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예배를 돕는 부수적인 것이 아닌 영으로 오신 하나님 그분만을 예배합니다.
영은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렇기에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예배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직장과 가정, 학교에도 계시기에 우리는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룩한 영입니다. 성결의 영입니다. 그래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그 죄악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의 무거운 짐들과 연약한 것들과 죄악에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를 주님 앞에 벗어 내어 드려야 합니다.
또한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까?
화려한 퍼포먼스는 있지만 말씀이 없는 예배는 아닙니까? 저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는 삶속에서 이미 그렇게 살아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아무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열악한 환경도 우리의 예배의 걸림돌이 아닙니다. 예배하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예배는 오늘을 살면서 2000년 전에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 그가 지신 십자가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감사하고 재현하는 사건입니다. 그런가하면 장차 오실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예배입니다.
초대교회는 전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도하는 행위 자체가 순교를 의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영향력은 대단하였습니다. 믿지 않은 자들이 바라본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고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기꺼이 순교를 결심하였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알랜 크라이더 교수는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배를 통하여 세상가운데 영향력을 끼쳤다고 본 것입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드렸던 한 번의 온전한 예배는 세상 가운데, 말하지 않아도 삶으로 보여지는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내 삶을 온전히 변화시켜, 세상 가운데 영향력이 되고 있는지 날마다 점검하길 원합니다.
이재학
시를 쓰고 설교를 하는 일이 얼마나 진실해야 하는지를 아는 글쟁이 목회자이다.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 하늘땅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으며 지역 내에서 목회자를 섬기기 위해 작은교회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박사)를 수료하였다. 지역 내에서 복음적이고 선교적인 삶을 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성도들의 삶의 자리를 먼저 고민하는 목회자, 말씀을 가슴에 심는 설교자가 되고 싶어 한다.